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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의 부드러운 엔진' 고명진 K리그



※ 이 글은 2014년 3월 15일에 작성했습니다.







한글이름: 고명진
영문이름: Koh Myungjin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88년 1월 9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왼쪽 미드필더
키: 185cm
몸무게: 77kg
소속팀: FC 서울


일대기(Biography)

고명진의 2004년 석관중학교를 중퇴하고 FC 서울의 입단하면서 만 16세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프로에 데뷔한다. 당시 FC 서울의 조광래 감독이 FC 서울의 전신인 안양 LG의 감독을 맡던 시절부터 이청용, 고요한, 송진형, 김동석, 안상현 등 유소년 축구 유망주들을 조기에 프로로 전향시켜 육성시켰는데 고명진도 이 사례 중 한 명이다. 석관중학교에 한창 재학하고 있던 2002년부터 안양 LG가 숱한 관심을 드러냈고 결국 FC 서울에 입단하게 되면서 프로 축구계에 발을 들인다.

FIFA 월드컵 독일이 개최됐던 2006년에는 월드컵 기간에 삼성 하우젠컵 2006(리그컵)을 진행했는데 이장수 감독이 이끌던 FC 서울이 삼성 하우젠컵에서 우승하였다. 그러나 이 우승은 FIFA 월드컵에 출전하는 박주영, 백지훈 등 기존의 주전 선수들보다 고명진을 포함해 한동원, 천제훈, 심우연, 김동석 등 서울이 안양 LG 시절부터 장기적으로 진행하던 유망주 육성 사업의 수혜를 받은 선수들이 주축을 이뤄서 일궈낸 우승이라 더욱 값졌다.

고명진은 이후 한동안 잊혀진 선수가 되고 만다. 셰놀 귀네슈 감독이 부임한 2007년부터 이청용, 기성용이 맹위를 떨치며 국가대표 선수로 성장하는 동안 그들과 또래인 고명진은 계속되는 잔부상과 슬럼프에 빠져 주전 경쟁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그대로 한 물간 유망주가 되나 싶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나자 고명진에게 다시 기회가 돌아오게 된다. 고명진은 이전과는 다른 과감한 플레이로 최용수 당시 감독대행(현재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고명진을 매우 중용했다. 고명진은 그에 보답하듯이 미드필드에서 유연한 전개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2011년 초반 황보관 감독이 좋지 못한 성적으로 사임한 뒤 그것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던 최용수 감독대행이 바람대로 남은 시즌을 잘 추스렀던 FC 서울의 2011년은 '고명진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공헌을 했고 공격 포인트(2득점 7도움)도 그 공헌을 대변하고 있다. 경기를 뛰진 못했지만 이 시기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처음 소집됐다는 것은 그만큼 선수의 능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증거이다.

다음해인 2012년에는 하대성과 찰떡 호흡을 과시하며 전년도보다 더욱 안정된 플레이로 FC 서울이 K리그를 우승하는 데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었고 2013년도 마찬가지로 공격 포인트는 전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수행해야 할 본연의 억할을 맡는 것에 점점 눈을 뜨면서 더 좋은 선수가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선수 분석(Player Analysis)

'왼발잡이 테크니션'이라는 희소성을 가졌고 볼을 다루는 기술이 정말 탁월한 선수이다. 땅볼 전진 패스를 상당히 잘 구사하고 동료의 특성에 맞춰주는 수동적인 움직임도 좋은데 지난 시즌까지 FC 서울에서 활약한 데얀과 특히 호흡이 좋았던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장점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진'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매우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전진 패스와 전진 드리블링은 K리그 클래식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이 같은 전진 능력은 공수 전환이 수시로 일어나고 공간이 많이 노출되는 K리그 클래식의 특성 상 전진 능력은 선수에게 확실한 이점이 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고명진은 전술적인 부분에서 역습으로 전환하는 시발점 역할을 아주 잘 해주고 있다.

기동성이 정말 좋으며 앞쪽으로 볼을 운반하면서 전방의 공격수들과 볼을 주고 받고 측면으로 빠지면서 뒤쪽에서 들어오는 선수에게 다시 내주는 장면은 고명진의 기동성을 대변하는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런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왼쪽 풀백의 공격력이 눈에 띄지 않아서 중앙 미드필더의 측면 지원이 더욱 필요하던 2011년, 2012년의 FC 서울의 전술에서 그런 모습을 더 많이 연출하려고 노력했다.

수비적으로는 사실 큰 장점이 없고 단점이 부각되고 있는 수준이다. 2011년 본격적으로 FC 서울의 주전 중앙 미드필더로서 발돋움한 이후 이전의 소위 볼을 예쁘게 차려 했던 이전의 고명진에서 벗어나 자신의 장점인 기동성을 좀 더 이용해 넓은 활동 반경을 보여줬지만 아직까지 미흡한 편이다. 이전에는 4-3-3 시스템의 '3'에서 뛰면서 하대성, 한태유(또는 최현태) 2명의 중앙 미드필더에게 지원을 받았으나 2013년 FC 서울은 윤일록을 영입해 2선 선수들의 움직임을 대폭 보완하여 2선에서의 좀 더 빠른 공격을 시도하게 되면서 4-2-3-1 시스템의 '2'에서 주로 뛰게 됐는데 이전에 2명의 중앙 미드필더가 아닌 단 한 명(하대성)의 지원만 받게 되면서 수세적 상황에서 고명진이 노출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전진'이 결국 막힐 경우 문제점이 드러난다. 전진이라는 것이 자신의 본래 위치를 벗어나 앞쪽으로 간다는 것인데 이 경우 본래 위치가 상대에게 허용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나 공간의 허용을 막는 것이 더욱 중요한 위치인 Back-4 라인 앞쪽은 상대의 공격이 이뤄지는 주요한 위치이기 때문에 만약 이것이 막히게 되면 상대가 비어 있는 공간을 이용해 빠른 역습이 가능하다. 2013년 K리그 클래식에서 FC 서울의 실점이 전년도에 대폭 늘어난 이유는 이 같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수비 가담이 많아지면서 자연히 상대 선수와의 경합도 많이 일어났는데 마치 태클 실력이 부족한데 무리한 태클을 자주 시도하면서 쓸모 없는 레드 카드를 종종 받았던 폴 스콜스를 연상시키는 미흡한 수비 기술도 약점으로 꼽힌다. 그렇다고 폴 스콜스처럼 아주 위험한 태클을 시도하지는 않으나 경고를 의외로 자주 받고 상대의 득점이 잘 나오는 위험 지역에서 파울을 자주 범하기 때문이다.

이는 위에서 설명한 '전진'이 막힐 경우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전진이 막히면서 상대에게 역습을 허용하면 그걸 막으려는 고명진은 뒤에서 쫓아오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게 되면 대체적으로 뒤를 노리는 태클이 상대 선수에게 가해지기 마련이고 상대의 뒤를 노리는 파울은 명백한 '옐로우 카드' 감이 맞기 때문이다. 고명진은 이렇게 전진이 막힐 경우 이러한 파울을 자주 범했다.

2014년에는 '영혼의 파트너'였던 하대성이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하고 강승조가 경남 FC에서 FC 서울로 이적했기 때문에 미드필드에서의 조화를 새롭게 맞춰봐야 한다. 고명진은 하대성의 조력을 매우 많이 받았는데 새롭게 이적한 강승조는 하대성의 플레이 스타일과 흡사하다(그러나 강승조가 경남 FC에서는 볼을 후방에서 뿌리긴 하나 후방에서의 플레이에 주력하기보다 종적으로 움직이는 활기 넘치는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하대성이 대구, 전북에서 활약하던 시절의 플레이 유형과 특히 더 흡사하다). 강승조는 고명진 본연의 활약을 계속 보여줄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좋은 선수이기 때문에 고명진 개인뿐만 아니라 고명진과 강승조 간의 조화도 계속해서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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